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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겨울철 바람막이, 풍차
작성자
안보연 학예연구사
게재일
2018-01-05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조회수
8776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쓰는 털모자는 옛날에도 인기이다. 조선시대 방한모는 이엄(耳掩), 호엄(狐掩), 피견(披肩), 풍차(風遮)나 우리말인 볼끼, 남바위, 아얌, 조바위, 굴레 등이 있다. 만선두리, 휘항은 남자들이 썼고, 아얌, 조바위는 여성용 모자였다. 이외 남바위, 풍차, 볼끼, 굴레와 같은 것은 남녀 공용이었다. 남바위와 달리 풍차는 볼을 감싸는 볼끼가 한감으로 달려있으며 ‘풍뎅이’라고도 불렀다. 남자들은 남바위나 풍차를 착용한 위에 사모나 갓을 쓰기도 했는데, 갓이나 사모와 함께 방한모를 착용하고 있는 조선시대 풍속화나 초상화에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여성용은 자색 선을 대거나 구슬 끈과 술 장식 등으로 꾸민다.

우리나라의 방한모는 대부분 머리 위쪽이 트여있고, 겹으로 만들거나 양 볼과 목덜미 뒤쪽까지 안감에 털을 대어 보온성을 높였다.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털모자는 양반들만 쓸 수 있었는데 점차 귀천과 문무를 따질 것 없이 털모자를 썼다. 양반의 털모자는 수입산 담비털이나 붉은 여우의 털을 썼고, 일반 서민들은 산양, 개, 고양이, 토끼털 등 차등을 두어 사용되었다.

특히 정조대에 이르러 담비털, 다람쥐털을 비롯하여 양털까지 밀수입된 것이 많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는 상인들의 외화 낭비로, 수입산 털모자 매매를 꼬집어 비판한 내용이 있다. 동관(東關)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 사람들이 애용하는 사오십칸이나 되는 점포에서 오직 털모자만을 사가는 의주 상인들이 우글거렸다고 한다. 겨우 한겨울 쓰고 버리기 일쑤인데, 상인들은 은을 쏟아 부어 털모자를 구매하였다고 하니 연암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의 은화가 털모자 집에서 녹을 판이라 했다. 한마디로 수입산 털모자는 겨울 사치품이자 투기품에 가까웠다.

이렇듯 털모자에 대한 문헌 기록은 사치와 폐단, 금지령 등에 대한 내용이 많다. 유독 한 가지 일화가 예외인데, 바로 정조대왕의 모자(帽子) 이야기이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는 성역에 종사하는 실무자와 부역꾼에게 여름 가뭄에는 공사를 일시 중지시키거나 질병 예방을 위한 약을 주었다. 1795년 동지를 앞둔 추운 겨울에는 장인 한 사람 당 모자 한 개와 무명 한 필을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저 묵직한 감동이 밀려오는 대목이다. 추운 겨울, ‘백성들의 추위가 나의 추위와 같다’는 정조대왕처럼 우리도 주변 온도를 1℃씩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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