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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유물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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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총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는 유물을 소개합니다.
  • 남원부지도
  • 남원부지도

    이 지도는 남원부 48방(읍 4방, 군44방)이 섬세하게 그려진 것으로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부터 100여년 후인 1,700년대 초의 것으로 추정되며, 옆의 “왜군 남원성 침공 작전도”에 나타난 성곽(城郭) 표시와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 당시 왜적의 남원성 침공 계획이 얼마나 치밀하게 이루어 졌나를 실감나게 알려 주고 있다.

  • 왜군남원성침공작전도
  • 왜군남원성침공작전도

    정유재란시 왜적이 볼모로 데려갔던 이복남(李福男)장군의 셋째아들 이성현(李聖賢)의 후손이 가문의 뿌리를 찾기 위해 60여 년간의 각고의 결실로 찾아낸 흑백 복사의 자료를 1986년 3월 게첨하였는데 1992년 5월 일본 가고시마겐(鹿兒島縣)의 沈 壽 官 韓國 名譽 總領事 도움으로 原本과 똑같은 복사본을 제작 게첨하게 되었습니다.

  • 壬辰倭亂侵攻狀況圖
  • 壬辰倭亂侵攻狀況圖

    이 침공상황도는 1592년 4월 14일(선조25년 임진년)에 왜군 15만대군이 부산에 상륙하여 중요성지를 함락 시키면서 북상한 침공경로와 1597년 5월(선조30년 정유년)에 11만 병력으로 재 침략한 경로를 알기쉽게 그린 것으로 육군, 수군의 대첩지, 의병봉기지 그리고 남원성 전투상황을 소상하게 조감하여 국란극복 현장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함에 있습니다.

  • 교지(敎旨)
  • 교지(敎旨)

    서기 1597년(선조30년) 8월에 가선대부(종 2품)이자 호군(정4품의 무관)을 병립한 정기원(鄭期遠)에게 자헌대부 예조판서(정2품)겸 경연(글을 강론하고 사상을 토론하는 일) 춘추관사(시정의 기록을 맡아보는 직위)로 추층한 교지.

  • 교지(敎旨)
  • 교지(敎旨)

    서기 1606년 12월에 정헌대부 예조판서 겸 경연 의금부 춘추관직과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세자 좌빈객의 관직에 있던 정기원(鄭期遠)에게 숭정대부 의금부 좌찬성 겸 의정부 관장과 세자의 스승 그리고 경연 춘추관사 및 내성군으로 추증한 교지.

  • 교지(敎旨)
  • 교지(敎旨)

    서기 1891년(고종23년) 6월에 통훈대부(정3품당하관) 한성부 판관인 박계성(朴繼成)에게 통정대부(정3품당상관) 이조참의로 추증한 교지.

  • 교지(敎旨)
  • 교지(敎旨)

    서기 1807년(순종7년) 4월에 통훈대부(정3품당하관)이자 진안현감 겸 남원진관 병마 절제도위(남원진에 있는 병마를 다스리는 직위)인 마응방(馬應房)에게 통정대부(정3품당상관) 승정원 좌승지(승정원의 비서에 해당함) 겸 경연 참찬관(임금께 학문을 강론하는 정3품당상관)으로 추증한 교지.

  • 아군의 병사행차 위용
  • 아군의 병사행차 위용

    연염(煙焰)이 하늘을 뒤덮고 전운이 깊어가자 전라병사(全羅兵使) 이복남(李福男)은 조방장(助防將) 김경노(金敬老)와 교룡산성(蛟龍山城) 별장(別將) 신호(申浩)등의 장수와 임사미(林士美)등의 장사 50여기(餘騎)를 포함한 수백명의 병력만을 거느리고 적이 이미 성밑을 포위하고 있는 가운데를 병사 행차의 위용을 갖추고 선두에서 나각(螺角)을 불고 북을 치면서 「물러가라」 외치며 이병사(李兵使)는 유연히 마상에 앉아 만복사(萬福寺) 앞 대로를 거쳐 남문으로 당당하게 들어 가고 있다.

  • 적의 공격과 아군의 반격
  • 적의 공격과 아군의 반격

    작전 2일째인 8월 14일 적이 계속 공세를 취하여 오니 성의 동남쪽을 지키던 수병(守兵)이 많이 전사하게 되었다. 12시경에 또 적이 총과 포를 쏘면서 돌진하여 오니 그 소리가 뇌성(雷聲) 벽력(霹靂)같고 총탄이 우박치느 듯 하니 이복남(李福男)ㆍ신호(申浩)ㆍ김경로(金敬老)등은 곧 병력 천여명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재치고 나각(螺角)을 불며 초요기(招搖旗)를 흔들면서 진격하니 그 함성은 하늘을 찌르는 듯 하였다.

  • 적의 협상 요구를 거절하는 아군
  • 적의 협상 요구를 거절하는 아군

    적의 군사 5명이 양원(楊元)에게 뵙기를 청하니 양원은 용성관(龍城館) 자기 처소에 들어 오게하고 적장(敵將)의 전황을 전달받은 양원은 내가 천하를 횡행하였으매 싸워서 이기지 않은 전쟁이라곤 없었다고 하면서 기세 당당하니 적 병사(敵兵士)는 남문으로 나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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